아기는 언제부터 자아를 인식할까
그 시점을 알게된다면 아마도 그것이 존재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아는 곧 비자아의 의식에서 시작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대상관계가 아닐까 싶다.
고통이 인식되고, 만족을 인식하고 자극과 비자극, 그것이 나로 오는가 아닌가를 통해 타인을 인식하고
나를 더 만족시키는 것은 무엇이며, 타인을 덜 만족시키는 것은 무엇인가의 비교 인지를 통해 자아를 더욱 인식해 나갈 것이다.
니체가 말했듯이,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을때도 있지만, 사실, 위의 생각들을 하다보면 결국 니체의 말이 맞다.
내가 생각할 수 없다면, 나의 존재도 의미가 없을지 모르겠다.
동물의 경우는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까.
여기서 말하는 '동물의 경우'라는 것은, '인간보다 하위인 개체'라는 것을 가정한 것이다.
동물의 자아 인식과 대상관계에는 어떤 차이가 있기에 우리는 동물을 사람보다 좀더 마음대로 대해도 되는 것일까.
4주된 강아지가 어미로부터 강제로 떨어지게 되고, 어미는 자식을 잃게 되어도 그것이 합당하게 여겨질 만큼 동물의 자기 인식은 한정적이며, 인간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도 된다고 스스로 인식하는 것일까?
나에게는 어떻게 그런 권리가 주어졌을까..
자두에게 미안하기가 그지 없다.
그리고 더더욱 자두,복숭아를 비롯한 꼬물이들에게도 평생 의리를 지키겠노라 다짐한다.
그들의 자아 인식에는 나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란 결론 때문이다.
자아인식과 자아실현은 분명 다른 것이고, 실현이라함은 실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실현 가능한 것이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사람이 동물보다 귀한 이유가 자아실현- 즉 꿈이 있기 때문이라면, 동물이 꿈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과연 그 결과물을 우리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동물이 인간보다 좀더 환경의 제약- 정확히는 인간의 제약에 갇혀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동물은 꿈따위는 소유할 수 없는 존재야라고 단정지을 근거는 되지못한다.
이와 동일한 사고 방식이 불과 100여년전 지구를 지배했고, 그런 이유로 같은 인간은 다른 인간을 종으로 부렸고, 정말 짐승처럼 사고 팔았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인간들에게 묻고 싶다.
네가 인식하는 스스로의 자아는 얼마나 인간적이냐.
그리고 네가 추구하는 꿈은 얼마나 숭고하냐.
과연 동물과 식물, 즉 네가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환경이 그들 스스로 인식하는 자아보다 더욱 숭고한 삶을 추구하고 있느냐.
그렇다면, 그 환경에도 동일한 권리를 주어라.
그리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멸치 한마리도 먹지 마라.
그럴 권리가 네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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