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5일 목요일

사토라레로 세상보기

작성일 2004.03.04 11:37

일본에서 수입된 드라마중에 사토라레라는 드라마가 있다.
다른 시리즈물 처럼 이 드라마 역시 영화화 되었는데..
사실, 사토라레라는 발상자체는 참 재미있는것이다.
IQ가 200정도 되는 사람들..
그러나 그 정신파동이 울려서 다른사람들에게까지 들린다는..
국가에선 자원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스스로가 사토라레라는 사실을
모르도록 한다.

맨처음엔 참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일본답다고..

하지만 그들은 온실속의 화초같은 존재일뿐.

세상은 점점 남의 사생활 은밀한것 알지 못하는 것을 공유하고 자 한다.

영화 토탈리콜에서 주인공은 조작된 기억속에서 살아야 했고
단편적인 기억을 좇아 갈떄 마다 요원들에게 저지당한다.
가장 믿어야하는 아내마져도 사실 요원이고..
그 아내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마저도 직업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친밀한 관계를 연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실 토탈리콜보다 더 경악할 만한 것은
영화 트루먼 쇼이다.
제목부터가 아이러니인 이 영화는
한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생활을 드라마처럼 상영한다.
그리고 이 모든것은 감독의 의도대로 조작되고 연출되어
하나의 스토리를 엮어 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큰 세트안에 갇힌 그를 동경하면서도 즐긴다.
관음증..
사람들은 남의 사생활을 그것도 아주 은밀한것까지
보면서 공유-훔쳐보기-하기를 원한다.
이 얼마나 역겨운 일인가..

그러나 이보다 더 심한 충격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느낄수 있다.
매트릭스는 한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가 속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가 아니라 인류가 속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인격대 인격에서의 감시가 아니라
비인격적인-컴퓨터에 의해 인격체가 감시 당하고 통제 당한다는 설정이다.
이 역시 사람들은 철저히 조작된 현실에서 조작된지도 모른체
그것이 다 인줄 알고 살아간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현실 역시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니 애써 위의 세 영화보다도 더 참혹하고 애써 외면하고 싶은 세계인지도 모른다.

출발점인 사토라레로 돌아간다.
사토라레는.. 사생활이 없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머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얼마나 고심해서 준비한것인줄 알기때문에
그 선물을 거절할 수가 없다.
그의 프로포즈는 세계 석학들이 모인 심포지엄에서의 마음속 생각이었고, 이미 그녀는 그의 모든 생각을 알고 있다.
이 얼마나 재미없고 시시한 연애인가.. 생활인가..
한쪽은 모든것을 공개당하고
공개당한쪽은 자신이 공개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철저히 조작된 세계속에서
사람들은 인격적인 관계보다는 인격적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그러나 실상은 비 인격적인 관계속에서 살아간다.


위의 세 영화에서의 공동점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속고 있는 세상보다 현실은 더 참혹하다는 것이다.
토탈리콜에서 현실은 식민화되어가는 별이었고
트루먼쇼에서의 현실은 그가 현실이라 믿던 작은 섬은 세트에 불과했다는 것이고
사토라레의 현실은 그의 진심을 모든 사람이 들으면서도 애써 외면해야하는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어떤 것에서도 참된 위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은밀한 것을 공유하면 그것이 깊은 관계로의 시작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방적인 개방 - 그것은 비인격적이며 폭력적인것이다.
우리가 정말 지향해야할 세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강한 정신과 비록 상처가 될지라도 인정한 상태에서의
미래지향적인 도약이다.


세 영화- 토탈리콜,트루먼쇼,매트릭스에서 각각 주인공들은
현실을 선택해야만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약을 먹으면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지만 다른색 약을 먹으면
돌아갈수 없는 강을 건넌다.-매트릭스
이 세트를 나가면 더이상 자기가 믿었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트루먼쇼..
사토라레에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 오히려 사토라레에게 해가 되는 것처럼 말했다. 사실 영화 사토라레에서는 자신이 사토라레인것을 알고 미쳐버린 사토라레가 나온다. 자신의 생각이 일방적으로 울린다는것을 안다면 안미칠 사람이 어디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면..

사토라레나 토탈리콜,매트릭스 ,트루먼쇼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현실보다 더 참혹한 현실이 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지구다.
영화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해결될 수 있는 - 그러나 외면당하는 도움으로 죽어가고 있다. 부와 식량의 불균형적 분배 ,강대국들의 군사력 남용과 쓸데 없는 스캔달..

그리고 공중권세가 다스리고 있는 어둠과 죄악된 현실이다.

헨리 나우웬의 영적 발돋움을 보자.
앞서 언급했던 영화에서의 피상적 관계와 일방적인 정보 공개- 관음증, 현실에의 기피...
사람들은 점차로 외로움속에 침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어떤 관계나 해결책도 우리의 깊은 외로움과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우리안에 "최후 해결책"은 우리를 더 옭아 맬 뿐이다.
고독함으로 나아가는것..
무엇보다 관계와 현실도피로 인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환상" 에서 벗어나 "기도"로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세트안에 갇혀있는 트루먼이 될 수 밖에 없다.
영원히 미치지 않은 사토라레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자 (the beloved)"로 부르셨다.
이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해야한다. 아니, 어떻게 하면 "예! 주님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지를 선택해야한다.
그것은 알약을 선택해야하는 니오 보다 더 첨예한 갈등속에 우리를 내 던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트릭스3 에서 니오가 스미스를 흡수(?)하고 죽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것처럼..우리는 죽어야하고
그래서 다음날 아침 예쁜 무지개를 보았던것처럼 또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신 그 사랑을 통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것을 믿는다면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주) 영적 발돋움 -헨리나웬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 헨리 나웬

댓글 없음:

댓글 쓰기